장영민
2019.8
도입
모더니즘 조각과 개념미술이 장소 특정적 작업으로 인해 논리적으로 연결된다.
로버트 모리스는 미니멀리즘 대상이 “작품에서 관계”를 제거하고 그 관계를 “공간, 빛, 관람자의 시각장의 기능” 으로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관람자는 다양한 위치에서, 그리고 빛과 공간 맥락이 변화하는 조건 아래 대상을 파악하므로 관계를 정립하는 것은 자신임을 알게 된다.” 고 덧붙였다.
60년대 말에 이르면, 이런 대상을 없애고 변경된 장소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이곳은 도시의 거리(공적인 공간)이나 갤러리나 박물관 내부(사적인 공간) 으로서 미술가들이 거의 개입하지 않던 곳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개입에 붙여진 이름인 ‘장소 특정성’은 다른 수단을 사용한 일종의 미니멀리즘이다. 장소특정성은 미술이 소비될 수 있는 실체라는 관념에 의존하는 미니멀리즘을 비판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니멀리즘을 확장한 것이기도 했다.
기억들
캘리포니아 클레어몬트의 포모나 대학 미술관에서 1970년 2월 13일부터 3월 8일까지 진행된 마이클 애셔의 프로젝트는 건물의 주요 전시 공간과 거리와 맞닿은 출입문이 있는 로비를 작업 대상으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이 공간에 들어선 관람자는 시각적 사건이라고는 벽 표면에 드리워진 빛이나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시야가 변하는 것밖에 없는 미니멀리즘 조각 내부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미술관의 사적 경계를 억지로 개방하여 24시간 동안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듦으로써 이 작업은 미학적 영역을 넘어 사회적 정치적 영역으로 이동했다. 애셔는 이 작업을 통해 미술관이 자율성의 공간이라는 가정을 비판하고, 심지어 그런 가정이 더 이상 작용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런 의미에서 애셔의 비판은 상품화와 소비가 가능한 미니멀리즘 대상들을 생산하는 것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이런 행위에 문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공간인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기구에 맞서는 것, 이렇게 두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미술관의 물리적인 경계에 맞추어 제작됐다는 점에서, 장소특정적이고 사회문화적 내용을 담는 미술관의 논리를 노출시키기에 적합하도록 제작됐다는 점에서, 제도 비판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미술 대상의 탈물질화, 그리고 미학적 판단에서 ‘보편적’이라 가정된 조건들을 보증하는 보이지 않는 관례나 사회적 협약에 대한 관심을 담기에, 개념미술과도 관련된다. 한편, 이 작품은 풍부한 현상학적 경험을 제공하고 관람자들이 몸을 움직여서 작업의 의미를 구성하는데 직접 참여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실제로 개념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는, 리처드 세라나 나우먼, 혹은 로버트 스미슨의 작업처럼 더 물질화된 유형의 개입 방식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70년대 초반, 광범위한 영역에서 진행된 다양한 작업들은 과거 10년 동안 회화와 조각 모두에서 진행된 미니멀리즘의 엄격한 형식 논리를 폐기한 것처럼 보였다. 수확 후 거대한 무늬를 남긴 밀 농장(데이스 오펜하임)에서부터 작은 종이 뭉치를 끼워 넣은 음향 방음판(솔 르윗)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재료를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오두막을 부수고 묻는 작업(스미슨)부터 낙하산 천을 수백 킬로미터 이어 놓는 작업(크리스토)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작업이 실행될 수 있었다. 그리고 제도 비판이라는 정치적인 개입(마이클 애셔)부터 특별히 고안한 장치로 번개가 치는 들판을 미학화(월터 드 마리아)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개입’이 성사될 수 있었다. 그러나 크라우스는 70년대 비평가들이 제시한 ‘다원주의’라는 주장을 넘어, 겉보기에는 무작위적이거나 다양한 개인적 선택인 것 같은 것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근원적인 논리를 찾으려고 했다.
모더니즘 조각은 무덤의 주인이 되는 인물상, 기마상, 피에타 상을 세워 장소가 지닌 의미를 재현해야 했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오면 기념물의 논리가 점차 시들해지고 모더니즘 조각 일반은 재현의 장으로서 ‘자율성’을 확립했다. 이것은 작품이 그 물리적 맥락에서 벗어나 하나의 전체로서 자기 충족적인 형식 체계로 완전히 물러나 버렸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 자율성에서 벗어나려는 블라디미르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을 위한 기념비’나 조각의 모든 조건을 거부한 레디메이드 같은 시도들도 있었다. 그러나 모더니즘 조각은 최대한 자율적 대상의 특권적 공간을 강화하려고 했다. 이런 충동에서 브랑쿠시는 재현의 장을 아래로 확장시켜 대좌까지 포함되도록 했으며, 작품의 어떤 부분도, 심지어 과거에는 평범한 물리적 받침대였던 대좌까지도 형식적이고 가상적인 것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선언했다.
모더니즘 조각은 과거에 조각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인 대상의 상징적 차원, 즉 건축과 풍경을 단호하게 제거해 버렸다. 따라서 모더니즘 조각은 거부를 통해서 생겨난 것이다. 즉 모더니즘 조각의 전제 조건은 일종의 순수한 부정성이며, 배제된 것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모더니즘 조각은 전통적인 조각의 토대가 되는 기념물의 긍정성과는 정확히 반대의 것이 된다.
구조주의는 포함과 배제를 서로 논리적으로 관련지어 사회적 형식을 생각하게 하는 모델을 제공한다. 논리적 구조에 근거를 둔 클라인그룹이라 불리는 모델은 두 개의 대립항, 즉 이항대립이 대립 자체의 성격을 바꾸지 않고도 어떻게 네 개의 항, 즉 네겹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모델을 조각에 적용하면, 모더니즘 조각은 그것이 세워진 장소를 표시하는 긍정적인 것이길 그만두고, 이제 건축이 아닌것에 풍경이 아닌 것을 덧붙인 범주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과거에는 오직 미로나 일본 정원, 혹은 고대 문명의 종교적 장소나 행렬에 등장하는 구조물에만 볼 수 있었던 ‘둘 다임’의 가능성을 가정한 풍경인 동시에 건축인 예에 해당하는 스미슨의 < 일부 매장된 장작 보관소 >가 '복합체'의 예다.
풍경과 풍경이 아닌것의 조합을 '표시된 장소'라 부를 수 있는데 스미슨의 < 나선형 방파제 >가 그 예다.
건축과 건축이 아닌 것의 조합을 ‘공리적 구조’라 부를 수 있는데 애셔의 < 포모나 대학 프로젝트 >가 바로 그 예다.
서사화
구조주의적 도표는 매체 내부의 규칙(조각은 물리적 한계를 지닌 삼차원 대상)에 얽매이기보다는 매체를 넘어서서 매체에 안정성을 부여하고 있는 문화적 조건으로 작업의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부각시켜준다. 그런데 크라우스는 ‘모든 시기에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라며 다원주의로 전개되어 가는 현상의 예로 확장된 장으로서의 ‘설치’ 작업을 역사와 관습에 대한 어떠한 기억도 없는 것 혹은 어떠한 참조할 내용도 없는 것이라 비판한다. 여기서 ‘설치’는 구조주의적 도표를 이용하여 만든 도표에 의해 정의된 것이다. 기억과 망각의 사이에 있는 자리가 매체가 위치한다면 그 역은 설치라는것이다. 기호사각형을 통해 포스트-미디엄의 조건을 분석하는 크라우스는 자신이 비판한 순수 형식적 미술에 초점을 맞춘 그린버그의 주장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한다.
참조
로잘린드 크라우스,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 < 확장된 장에서의 조각 >
할포스터, 『실재의귀환』, < 미니멀리즘의 난점 >
이현진, < 크라우스의 기호사각형을 통해 바라본 포스트-미디엄의 조건, 그리고 그 확장된 이해 >
로잘린드 크라우스, ‘Performing Art’ https://www.lrb.co.uk/the-paper/v20/n22/rosalind-krauss/performing-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