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형
2019. 3
도입
소비자본주의의 도래. 지배적인 경제 논리의 전환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그에 따르는 새로운 예술 논리의 갱신과도 맞물린다. ‘생산’과 ‘사용가치’ 나아가 ‘노동자’와 ‘부르주아’의 대립을 그 중심에서 ‘교환’과 ‘소비(자)’가 대신하게 되는 새로운 정치 경제적 지형도는 마땅하게도 그 이전의 모더니즘적 기획들의 시효가 다했음을 알린다. 그러한 와중에 당시 런던의 현대미술연구소(이하 ICA)가 지나간 궤적을 살펴보자. 그들로부터 우리는 역사의 긴장지점으로부터 비롯되는 다양한 예술의 반응과 하나의 적응 사례를 보게 된다.
처음은 천진난만한 모더니즘적 기획을 자처하던 초기의 ICA 선배들이 퇴장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 다음 인디펜던트라는 이름의 그룹이 주역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당시 ‘대중적 예술’의 팽창에서 나타난 다양한 자원들을 적극 참조하여 새로운 미적 갱신을 시도한다. 영국 팝아트의 선구자로 위치하는 그들의 시도는 아무래도 미술사안에서 썩 괜찮았던 것 같다.
우리들은 인디펜던트 그룹이 곧잘 다루었던 변형된 인간 이미지-’기계 인간’ 도상을 중요하게 살필 것이다. 이 도상은 인디펜던트 그룹의 성장(?)에 따라서 조금씩 변형된다. 이 같은 포커스는 예술과 기술이라는 진부한 토픽을 되풀이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토픽 자체가 아니라, 이 토픽이 어째서인지 특정한 구간을 통과하면서 전혀 다른 토픽으로 전치되는 착시를 보다 중요하게 주시할 것이다.
기억들
1. 1946년 설립된 런던의 현대미술연구소(이하 ICA)는 설립 이후로 십여년 동안 모더니즘적 가치들을 옹호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그리 탁월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각각 ‘구축주의’와 ‘초현실주의’를 지지하던 ‘허버트 리드’(초대 관장)와 ‘롤런드 펜로즈’가 이끌던 초기 ICA의 활동은 그들의 젊은 후배인 ‘밴험’으로부터 ‘추상 좌파 프로이트 미학’이라는 치욕스러운 조롱을 받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는 단순히 ‘구축주의’와 ‘초현실주의’를 조야하게 합성하던 ICA의 미적 미숙함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지속된 영국의 경제적 침체와 정치적 한계들에 대한 확인, 그리고 냉전이라는 국제정치의 새로운 지형도와 더불어 계속해서 심화되었던 자본주의 논리가 도달한 새로운 특이점-소비자본주의의 도래-은 애석하게도 모더니즘의 임종을 가속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의 역사적 조건들이 ICA 스스로에게 난처한 퇴행만을 확인 시켜준 것은 아니었다. 위기는 항상 기회가 되기도 하는 법. ICA를 난처하게 만든 위기가 다름 아닌 역사적 조건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그러한 조건들에 훌륭히 반응한다면 나름의 기회를 잡았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나의 결론을 미리 이야기하자면 ICA는 하나의 적응 사례를 잉태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 주역은 싸가지 없는 ‘추상 좌파 프로이트 미학’이라는 독창적인 비판적 수사를 개발한 ‘밴험’과 그를 포함한 후배 일당들에게 돌아간다. 그 일당들의 모임인 ‘인디펜던트’ 그룹은 ICA의-훗날 연구소의 주도권을 가져가게 된다-부속기관이었다. 그들 소속의 대표작가인 ‘리처드 해밀턴’과 더불어 흔히 영국 팝아트의 선구자로 위치하는 이 그룹은 당시의 역사적 긴장들로부터 탁월하게 반응하여 새로운 미적 갱신들을 성취한다. 보다 중립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러한 역사적 긴장과 조건들에 반응하여 하나의 미적 반응-적응 사례를 남겼다고 보는 편이 더 마땅하겠다.
그들이 초기 ICA 선배들과 크게 구분되는 점들 중 하나는 당시에 팽창중이던 대중문화-예술의 형태과 논리를 곧잘 반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들이 대중문화의 여러 저속한 형태와 논리들에 친숙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 인디펜던트 그룹 역시도 나름의 어지러운 전개 과정을 거친다. 이는 한편으로는 당시 대중문화는 모두 저속한 것으로 여기며 고급예술의 지위를 영속화하고자 했던 영국의 아카데미즘에 대한 비판적 제스쳐이면서 동시에 심화되어가던 소비자본주의 문화의 불가피한 반영이었다고 한번 더 강조할 수 있겠다.
그리고 앞으로 확인하게 될 테지만, 우리는 모더니즘 력사의 끝자락에서 태동한 영국 팝아트의 선구자들로부터 당시의 역사적 긴장들이 모더니즘적 기획들의 단절로서가 아닌 그것들의 자본주의적 적응으로 이어지게 되었음을 보게 된다. 그들의 선배들이 흠모하던 모더니즘적 기획의 두 축인 ‘구축주의’와 ‘초현실주의’가 각각 미적 실천의 정수로 삼았던 ‘생산’과 ‘무의식의 정신 능력’은 젊은 팝아트의 선구자들을 거쳐 ‘교환’과 ‘소비심리’로 우화한다.
< 인디펜던트 그룹의 기계인간 도상 1, 2, 3 >
2. 인디펜던트 그룹은 대중 문화가 산출한 여러-저속하지만 동시에-생경한 형태와 논리들을 자신들의 미적 실천 안으로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팝아트적 논리에 맞닿아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인디펜던트 그룹은 1955년을 기점으로 모임을 재소집 했을 때 ‘순수미술-대중예술 연속체’라는 화두를 가져오면서 비로서 팝아트적 미학을 예시하게 된다. 그 이전까지(처음 그룹이 가시화된 1951년부터) 그들의 관심사는 대게 ‘과학’과 ‘기술’에 초점이 가까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들이 소비자본주의의 문화논리를 깊이 통찰하지는 못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그들에게는 아직 순진한 측면이 남아있기는 했다. 그러했던 그들의 미적 논리가 변화하게 되는 과정은 그들이 꾸준히 다루었던 도상인 변형된 인간 이미지-‘기계 인간’ 형상의 전개를 통해서 극적으로 나타난다.
처음 인디펜던트 그룹이 변형된 인간 이미지를 다루었던 전시인 < 인간, 기계, 그리고 운동 >(1955)에서 ‘기계 인간’ 도상은 막연히 새롭고 신비로운 기계 이미지들로 채색되어 나타난다. 제의적인 숭배대상에나 어올릴법한 이 기계 인간들과 그들의 미래세계에 대해서는 한편 역설적이게도 모더니즘적인 정취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구태의연하고 한편 순수한 구석이 있는 기계 인간 도상은 그들의 절정기에 기획된 전시 < 이것이 내일이다 >에서 보다 다층적이게 된다. 본 전시는 12개의 소그룹으로 이루어졌는데, 우리는 그중 가장 극적으로 대조되는 ‘그룹 투’와 ‘그룹 식스’의 사례를 살펴볼 것이다. 그룹 식스가 디자인한 ‘안뜰과 별채’에서 기계 인간은 그들이 이전에 제시했던 환상적 도상과는 달리 기괴하고 공포스럽게 나타났다. 이는 마치 핵전쟁 이후 멸망한 세계에서 방사능에 피폭되어 기괴하게 변형된 인간 돌연변이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으며, 여기에는 새로운 과학 기술이 초래할 파국에 대한 염세적인 두려움이 두드러졌다. 또한 해당 전시에 놓여진 반-래디메이드적 오브제의 성격도 따져볼 만하다. 통상 래디메이드는 재현의 위기, 원본성의 상실에 대한 반응과 맞물린다. 그러나 그룹 식스가 전시장에 놓아둔 오브제의 원시주의적 정취는 외려 다분히 존재론적이거나 심지어는 멸망한 문명에 대한 신화적 사물처럼 보인다. 여기서 교환가치 중심의 소비자본주의의 상품화 논리에 대한 나름의 비판적 거부를 읽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역시 끔찍한 외상적 표현으로 뒤바뀐 기계 인간 도상 만큼이나 다분히 무정부주의적이라는 점을 지적해두자. 반면, 그룹 투가 디자인한 전시에서 기계 인간은 스타 여배우를 앉고 있는 친숙한 로봇 캐릭터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새로운 기술들이 초래할 파국에 대한 음울한 두려움은 온데간데 없으며, 오직 현재의 소비자본주의가 생산한 대중문화의 스팩타클을 따르며 복제된 냉소적인 찬미만이 짙게 남아있다.
서사화
1. 예술과 기술이라는 진부한 토픽에 관해서
예술과 과학 기술의 접목을 화두로 삼았던 초기 인디펜던트 그룹의 활동에 대해서 할 포스터는 그들에게 예술과 과학 기술이 분리되어 있다는 (그릇된)인식이 전제 되어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들이 이후 팝아트를 예시하게 되면서 예술과 기술에 대한 관심은-그들의 그릇된 인식과 함께-파기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술과 기술이라는 진부한 토픽, 새로운 기술들에 의한 충격, 기술이 세계의 변화를 위한 매개라고 믿는 다소간 진부한 모더니즘적 믿음은 갱신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는 인디펜던트 그룹 스스로의 초점 변화, 이 진부한 토픽에 대한 반성적 갱신이라기 보다는 당시 기술의 전적인 위상 변화와 관련되는 것은 아닐까.
인디펜던트 그룹이 사랑했던 ‘기계 인간’ 도상의 아마도 가장 세련된 판본일 ‘포스트휴먼’을 주제로 하는 근래의 대중 강연들에서 거의 클리셰가 되어 있는 서두가 하나 있다. 거두절미하고 포스트휴먼은 곧 도래할 ‘미래’의 인간 주체-이미지가 아니라 이미 우리들이 포스트휴먼의 범주에 속해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안경이나 렌즈 따위와 같이 우리들은 이미 흔한 일상 안에서 기술적 장치들을 장착하고서 몸의 지각을 확장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사실 그런 점에서 조잡한 가죽데기를 걸치고 체온을 유지하거나, 지금으로서는 아주 기초적이지만 당시에는 최신 과학 기술이었을 ‘돌 깎기’를 도입하여 제작한 도끼를 통해서 인간 신체의 근력 기능을 비약적으로 확장시킨 원시인들도 마찬가지로 이미 포스트휴먼이었던 셈이다. 물론 우리가 포스트휴먼이라는 생경한 용어로 흔히 상상하는 (변형된)인간 이미지는 곧 도래할 (것이라고 여기는) 온갖 진기한 과학, 기술적 발전을 통해 갱신된 인간 주체일 것이기 때문에 예의 서두는 거의 헛소리 이상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그와 같은 클리셰가 우리들에게 환기시켜주는 바는 꽤나 명확하고 생산적인 측면이 있는데, 기술과 인간이 그리 단절된 것은 아니며 항상적으로 매개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점은 이와 같은 항상적인 연결을 상기하는 것 만으로는 정말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포스트휴먼’, 나아가 최근 점증하는 미래의 전망에 얽힌 새로운 과학 기술적 용어들에는 새롭고 다양한 낙관 혹은 불안을 투사되곤 한다. 그렇지만 이 같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가진 파국적 혹은 유토피아적 잠재력은 우리들이 이미 포스트휴먼이었음을 상기하면서, 돌도끼부터 현재에까지 편재해있는 우리들의 기술에 대한 무지함이 확장된 착시일 따름이라고 하면서 일축되는 것 같다. 마치 곧 도래할 온갖 기묘한 기술적 충격들도 얼마 안가 일상적으로 적응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대체 기술의 위상은 어디라고 볼 수 있을까? 인디펜던트 그룹이 가장 마지막에 제시한 기계 인간 도상을 한번 떠올려보자. 기술에 대한 미적 산출 중 하나였을 기계 인간 도상이 소비 문화적 스팩타클로 전치되는 바로 그 순간을 말이다. 여기서 더 이상 예술과 기술이라는 진부한 토픽은 사라지고 없다. 더욱이 이전과도 같은 기술의 유토피아적, 파국적 잠재력에 의한 전망 또한 사라진다. 대신 그 자리는 기묘한 대중문화속 기호들의 파편들이 대신하게 된다.
2. 진부한 토픽 이후
사실 여기서 기술의 위상은 논할 것이 못 된다. 왜냐하면 뭣도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타나는 모종의 냉소를 위에서 언급한 현대적 댄디함과 조응시켜 본다면 어떨까? 기술이 초래할 불안, 그 안의 모순과 긴장관계를 간단히 일축하는 현재 우리들에게 유일하게 허용되어 있는 듯 보이는 바로 이 세련된 처세술 말이다. 물론 이 같은 맞물림에 주목하는 순간 우리는 초역사적, 비변증법적인 난처함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무지의 긴장관계를 해소하기 위해서 세련된 현대적 댄디함이 반복되는 것처럼, 기술에 의한 모순과 적대 또한 반복된다. (근래 과학 기술의 충격적 발달을 함축하는’4차산업혁명’ 따위의 용어들로부터 비롯되는 온갖 일반적 수준에서의 겁박과 불안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물론 여기서 역사와 유행, 반복을 설명하는 싸구려 지혜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고 우리가 기술적 충격과 그것에 얽힌 모순과 긴장 관계-를 나타낼 수 있었던 형식과 순간-가 사라지고 대중문화적 스팩타클로 흡수되는 순간의 규명을 시도하거나, 나아가 다시금 그 긴장관계를 나타낼 수 있는, 라캉의 용어를 빌리자면 현실의 기저에 있는 실재를 환기시키기 위한 이론적 논의를 진행하는 일이 우리들의 역할은 또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술이 가능한 역할을 초과하는 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금 우리들의 본업인 미학적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도 앞선 싸구려 지혜를 빌릴 때만큼이나 만만치 않은 난처함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술에 얽힌 긴장관계를 미학적 수준에서 나타내기 위해서 인디펜던트 그룹이 팝아트 이전에 취했던 것처럼 구태의연하고 모더니즘적인-유토피아적 디스토피아적-제스쳐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걸까? 사실 그러한 생각 이전에 인디펜던트 그룹이 기술에 대한 관심을 파기하고, 팝아트로 넘어가면서 소비자본주의의 문화 논리 자체에 내재한 긴장관계를 기호학적 수준에서 나타내게 되는 미학적 갱신-팝아트-을 변호하는 것이 더 옳은 것은 아닐까? 당연히 둘 모두 비판적으로 부족함 없이 검토되어야 하겠지만, 인디펜던트 그룹 자체가 소비자본주의의 도래라는 역사적인 긴장 지점에서 출현했음을 변호해두고 싶다.
메모리 네크로맨싱 (N37.6° E126.9°)
주현욱. 2018
모든 것을 기억 가능한 형태로 아카이빙 하는 21세기적 기억의 서사망 표면에 얼룩처럼 묻어있는 20세기적 기억의 서사망을 강령시킨다.
1. 소환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5km의 범위를 설정한다.
2. 설정된 범위 내의 유폐된 기념인물상*을 타겟팅한다.
3. 해당 타겟들을 스캔한 후 소환 지점에 불러낸다.
여기서 다시 한번 논의를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 우리들의 동지 정강산의 논의를 살짝 빌려올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팝아트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는 데에서 제시한 문제의 틀 하나를 참조한다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경험세계가 규격화된 소비제들로 채워져가는 세계의 양태를 미메시스함으로써 모더니즘적 저자성을 가장 극단적인 수준에서 비난 할 수 있었던 초기 팝아트의 '물화'의 반복이 시장과 예술 고유의 영역에 대한 시장주의적 냉소와 공모하게 되는 지점을 고려해야 한다.”(서브 텍스트 1: 오늘날 예술의 양태를 직시하기) 정강산 동지의 논의에 따르면 팝아트가 보여준 반성적 차원에도 불구하고-그것이 기호학적 수준에서 중산 계급의 일상의 파편들을 이데올로기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로서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팝아트는 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를 열어젖힌 원죄를 떠안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도달하게 된 역사적 조건이 우리들에게 전적으로 무용하지만 동시에 불가피하기도 하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바로 이 점이 우리의 주현욱 동지가 훌륭한 마르크스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작업들에서 ‘역사적 기억하기의 불가능성’이라는 다분히 포스트모던스더운 조건 거대서사의 불가능성을 작업의 방법론 안에 적극 참조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이 경우 비역사적 조건이었던 것은 외려 동시대의 가장 역사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오늘날의 역사와 기술에 얽힌 모순과 긴장관계를 후기 자본주의의 내적 논리를 온전히 따르지 않으면서 그것을 비판적으로 참조하는 방법중 하나가 될수 있을 것 같다. 이는 또한 인디펜던트 그룹이 기계인간 도상 1, 2에서 전개한 구태의연한 모더니즘적 제스쳐를 오늘날 유효한 측면에서 갱신하는 하나의 단서가 될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인디펜던트 그룹의 기계 인간 도상의 최종 판본을 떠올려보면서, 거기서 볼 수 있는 아주 전형적인 비극적 구도에 한번 주목해보고 싶다. 의식을 잃은 채 축 늘어진 여주인공을 안고 있는 인물의 구도는 헐리우드 영화에서 비극이라는 신화적 서사를 연출하는 가장 전형적이면서도 극적인 이미지이다. 이는 일종의 동시대판의 뒤집혀진 피에타상처럼 느껴진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앞선 세련된 처세술을 따라서 오늘날의 서사들이란 거짓이며 허구적인 시뮬라크르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정말로 충분하지 못하다고 하겠다. 이는 실은 신화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급진화 되어야 마땅하다.